구한말에서 해방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한 가족 4대를 통해 비극적으로 투영되는 우리 모두의 슬픈 이야기.
* 펄 S. 벅 (1892~1973)
미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자랐다. 1931년 [대지]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여류작가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63년 [살아 있는 갈대]를 출간했다.
* 배경
미국, 중국, 일본 등 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려 하는 가운데, 조선을 이끄는 궁 내부에서 각자 다른 나라와의 친선을 주장하고, 조정도 당파싸움으로 분열된다. 한편 탐관오리의 착취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동학을 일으킨다. 결국 일본이 조선을 장악하고 일제 치하가 시작된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 14개 조항을 발표한다. 김일한은 윌슨 대통령을 만나 조선의 독립을 촉구하려 하지만, 윌슨은 이미 민족자결 지원을 요청하는 여러 민족을 만나 지쳐있다.
만세운동과 독립운동. 연춘은 중국으로 떠나 조선의 혁명가 사이에서도 대립이 있음을 깨닫고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춘은 떠돌다 아들 사샤를 만나 조선으로 돌아가고, 조카 양과 재회한다.
연춘과 양은 마리코를 통해 미국 대통령에게 조선 독립을 강구하는 편지를 보낸다. 한편 연춘은 만세를 외치다 총살당하고, 양은 살아 있는 갈대의 의미를 깨닫는다.
명성황후의 측근이자 개화(특히 미국과의 친선)를 주장했던 김일한의 4대에 걸친 이야기.
김일한의 아버지는 흥선대원군, 고종(상감)을 지지하다 뇌졸중으로 사망.
김일한은 명성황후의 측근으로 나라 침략에 대비해 백성의 참 모습을 살피려 하고, 미국 개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심화되는 갈등에 못 이겨 지방에 칩거하고, 명성황후는 끝내 서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제에 의해 살해된다.
김일한의 아들 연춘은 어려서부터 동학당 일원인 최성호에게 배웠으며, 성인이 되자 홀로 한양으로 떠나 동학당에 참여한다. 훗날 독립군 "살아 있는 갈대"가 된다. 일제에 의해 감옥에 투옥되었다 탈옥한 그는 가정을 이루지 않고 중국을 떠돌며 조국독립을 위해 애쓴다.
김일한의 아들 연환은 일제시대에 근대 문물을 받아들여 학교 선생으로 일하다 기독교도 인덕과 결혼한다. 인덕이 임신한 몸으로 일본 순사들에게 끌려가 험한 꼴을 당한 뒤 종교에 몰두하자, 일한은 독립선언문 선포에 참여했다가 인덕과 함께 교회당 화재로 사망한다.
김연환의 아들 양은 부모 사망 후 조부모 아래서 자란다. 중국에서 돌아온 삼촌 연춘의 영향으로 조선 독립을 위해 애쓰다 사랑하는 마리코에게 죽음을 무릅쓴 부탁을 한다. 연춘의 사망 후 살아 있는 갈대 의미를 깨닫고 마리코에게 연락한다.
* 인물 관계
김일한 & 박순희 : 중전의 측근으로, 김일한은 개화를 주장한다.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지방에 숨어 살던 김일한은 아들 연춘과 며느리가 일제에 당하는 것을 지켜보고 윌슨 대통령을 만나러 떠날 결심을 한다. 프랑스에서 윌슨 대통령을 조우하지만 그는 이미 여러 민족의 요구에 지쳐있다.
ㄴ 첫째 연춘 & 한녀 : 동학당에 가담. 독립운동 중 암살기도 사건에 휘말려 재판에 섰다가 탈옥한다. 만세운동 후 독립신문을 발간하던 연춘은 한녀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으나 대의를 위해 그들을 져버리고, 일본의 우방국인 중국으로 가 동포들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 공산주의와 폭력 저항운동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한녀와 아이를 향한 사랑을 깨달은 연춘은 둘을 되찾기 위해 떠돌다 사샤를 만나 조선에 돌아간다. 조선에서 만세를 외치다 총을 맞아 죽는다.
ㄴ 사샤 : 한녀가 죽고, 재회한 아들. 연환과 같은 귀를 가짐
ㄴ 둘째 연환 & 최인덕: 귓볼이 일그러진 채 태어났으며, 서양식 수술로 회복한다. 일제시대 학교 선생을 하며 일본의 힘으로 근대화할 것을 기대한다. 인덕에게 반해 교회에 따라가고, 기독교 신자가 된다. 인덕은 셋째를 임신한 몸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한 기독교도라는 의혹으로 순사들에게 끌려가 옷이 찢기고 폭행당한다. 연환은 신민회에 들어가 고종 장례일에 조선 독립문을 선포한다. 그리고 그 날 불탄 교회당 안에서 연환과 인덕, 딸은 죽는다.
ㄴ 양 & 마리코 : 통찰력이 높은 연환의 아들. 가족 중 홀로 살아남아 조부모 손에 큰다. 5개국어를 하는 일본영국 혼혈 무용수 마리코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마리코에게 미국의 대통령에게 조선 독립을 강구하는 편지를 전달해줄 것을 부탁한다. 연춘의 죽음을 통해 살아 있는 한 새순이 솟는다는 것을 깨달은 양은 마리코에게 향한다.
ㄴ 곱단 : 부모에게서 팔려와 남편에게 매맞는 것을 연환과 인덕이 구함.
흥선대원군 : 쇄국 정책을 주장
ㄴ 고종 & 중전(명성황후) : 고종은 일본과 서양을, 중전은 청나라에 의지
ㄴ 동궁 : 지적장애
최성호 : 동학당의 일원. 연춘의 선생
조지 푸크 : 조선에 파견되어 최선을 다했으나, 미국에 조선의 상황을 끝내 이해시키지 못하고 조선을 떠난다.
* 문장들
1. 훌륭한 사람은 노기를 밖에 드러내지 않는다. 넌 화가 났고, 네가 화났다는 것을 감히 선생에게 말할 수가 없어서 혼자 아무도 보지 않는 이곳에 왔던 것이겠지. 그리고는 아무 힘없는 저 어린 죽순을 짓밟았던 거지. 그 뿌리에서는 싹이 단 한 번밖에 나지 않는다. 이들 죽순이 자라나 여름 바람에 그 우아한 잎을 흩날리는 대나무가 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중략) 대나무는 비록 속이 비었지만, 생명이 있는 것이다. 이제 그 뿌리는 네가 짓밟은 것들을 대신하여 다른 싹을 내야 한다.
2. 글자를 익히거나 시구를 공부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 속에 있는 의미를 배워야 한다.
3. 늘 지식을 목마르게 추구해야 하며, 남들에게 배우려면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4. 내가 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조선 사람이라는 것뿐이오. (중략) 그러니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겠소.
5. 학문은 더이상 삶과 별개의 영역이 아니었다.
6. 불평등한 그들의 삶은 수백 년에 걸쳐 내려온 것이고, 하루아침에 한 뙈기의 땅에서 한 사람의 지주에 의해 고쳐질 수는 없는 것이다.
7. 모름 -> 무관심 -> 방관, 아무것도 할 수 없음
그들은 우정을 맺기에는 역사가 너무 일천했고, 인간과 인간을 묶는 깊은 연대감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친절하다는 것은 유쾌하기는 하지만 깊이가 없는 것이고, 애초에 그들의 그릇 이상의 깊이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였다. 남을 이해하려면 먼저 머리로 알고 다음에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조선 민족의 길고 슬픈 역사를 알지 못했고, 우연히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놓이게 된 작은 나라의 공포를 느낄 수도 없었다. 국왕, 그의 백성들, 심지어 일한까지도 미국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원했다. 친절함에서 비롯된 가벼운 약속을 진정한 우정의 맹세로 착각한 것은 외국인들에 대한 그들 자신의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을 미워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 없이는 조선 민족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일한을 알고 있었다.
8. 갈대는 꺾여도 꺾여도 되살아난다고 말입니다. 아버지의 그 말씀은 언제나 사실이었습니다. (중략) 아버님께서 제 얼굴을 영영 보지 못하시게 되면, 제 이름을 영영 들으실 수 없게 되면, 이 아들 역시 하나의 갈대였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제가, 갈대 하나가 꺾였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는 다시 수백 개의 갈대가 무성해질 것 아닙니까? 살아 있는 갈대들이 말입니다.
9. 인생이란 이렇게도 견디기 힘든 짐을 지고 가는 것일까? 그러나 그 짐은 지지 않으면 안 된다.
10. 조선인과 기독교인, 그는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자신의 진면목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아마도 그 두 부분은 그의 내부에서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합쳐져 존재할 것이었다. 조선인 기독교도. 그렇다, 앞으로 그는 새로운 종교 기독교에 귀의한 조선인으로서 존재할 것이었다.
11. 좋은 교훈을 얻은 거다. 우리가 믿을 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밖에 없다는, 그 누구도 우리를 도울 수 없다는 교훈 말이다.
12. 이 범 같은 계집
13. 진짜 전쟁은 지금 우리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어.
14. 일본 본토에서, 짜르 치하의 시베리아에서, 군벌들이 지배하는 중국에서 죽어간 망명자들은, 그리고 상해에서 프랑스인이나 영국인들 손에 죽은 망명자들은 대체 무슨 수로 헤아린단 말인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고문으로 죽어갔는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수한 젊은 인재들을 잃은 조선의 손실은 또 어떻게 헤아릴 것인가?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자기 나라를 자기들에게 돌려달라고 했던 것뿐이었다.
15. 네 꿈은 무어냐? 네 희망은 어디에 있어? 젊은이라면 누구나 꿈과 희망이 있는 법이지.
16. 민족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동안은 현대 국가로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승리의 순간에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는 새로운 침략을 불러들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난을 무릅쓰고서라도 우리 해안을 지킬 해군을 건설해야 합니다....
17. 봄이 되면 대나무의 늙은 뿌리에서 푸른 새순이 솟아난다.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야. 인간이 태어나는 한은.
18. 역사의 과오에는 가차없는 보복이 따르는 법이다. 태프트와 가츠라가 동경에서 체결한 그 비밀 협약과 한국 땅에서 죽은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오늘날 한국은 38선으로만 분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점령기에 조국을 탈출해 러시아로 간 사람들이 낳은 한국인들과도 분단되어 있다. 이 아이들은 사샤처럼 공산 체제에서 자랐으므로, 한국에 오면서 조국을 '해방시키러' 온다고 믿었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그들 손에 죽었다.
하지만, 왜 지난 이야기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보다는 하나의 끈이 우리 두 국민을 한데 묶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용감한 미국 젊은이들이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로서는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목적을 위해 향수에 시달리고 절망적 피곤에 찌들면서, 더러는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한국의 험한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싸웠다. 그 의기와 희생 정신을 살려 지난 일들은 잊도록 하자. 미래를 위한 교훈이 될 만한 것만 남겨두고서.
* 느낀점
1. 미국인 펄 벅 여사, 그것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정받은 작가가 한국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흥미롭다. 읽는 내내 역사서 그 자체의 문장을 미국인이 썼다는 것에 인지부조화가 왔다. (물론 번역한 것이지만..) 개화기부터 해방까지 탄탄한 역사를 따라 소설이 진행되어 읽는 것만으로도 역사 공부를 하는 느낌. 넓은 시대를 다뤘지만 분량의 압박도 적은 편이다.
2. 개화기 김일한의 고민과 20대 끝자락에 접어든 내가 해야 하는 고민이 맞물린 것처럼 느껴졌다. 민중이 삶에서 무엇을 고민하고,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알고 싶어 비밀리에 그들과 섞여들어 관찰했으면서도 정작 이론만 좇으며 현실을 몰랐다는 점, 중전의 측근에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미국인과는 어울려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탁상공론의 위험함을 느꼈다. 책상에 앉아 아무리 고민한들 직접 몸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세상의 넓음을 더 경험하지 않고 이대로 정착해도 되는것일까? 인생은 길다지만 지금 도전하지 않는 내가 미래에는 도전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초조함.
3. 김일한은 무엇이 백성을 위해, 조국을 위해 최선의 선택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한편 가족들과 본인의 목숨 보전을 위해 결정적 순간에 지방에 숨어들고, 조선을 떠나는 조지 푸크를 통해 그간의 일들을 듣는다. 결국 그는 싸늘한 주검이 된 명성황후와 재회하고, 명성황후는 일제에 의해 시해된다. 그러한 김일한의 선택이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4. 김일한은 미국인과 말도 해본 적 없으면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확신하고 명성황후에게 조언한다. 강대국 사이에 낀 작은 나라 조선을 지킬 유일한 동아줄로써 미국에 과도한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닐까? 무모한 확신에 기인해 개화를 주장하면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하지 않는가? 김일한은 미국이 조선을 돕지 않고 결국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자, 기독교를 반대하는 등 미국에 대한 거부감을 보인다.
5. 개화를 주장하며 상투도 잘랐던 김일한은 아들 김연환이 기독교인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국의 발전을 위해 개화해야 한다는 마음과 과거 조선과 맺은 조약을 버리고 배신한 미국에 대한 미운 마음이 충돌한 것.
6. 무엇보다 우리들은 단결해야 한다는 것. 조국을 지킨다는 같은 목표를 위해 골몰하지만 개화/쇄국, 폭력/비폭력 운동으로 대립하는 등 방법의 대립을 피할 수 없다. 어떻게 단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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