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보통 서른을 맞은 사람 (예를 들면, 알렉스?)을 귀엽게 놀릴 때 달걀 한판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최근에 마트에서 달걀 한 판을 보다가 문득 그걸 달력으로 만들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달이 보통 30일 정도 되니까요. 달걀 한 알 한 알마다 숫자를 적고, 하루에 한 알씩 먹어나가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달걀 우리네 일상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아요. 짜지도 달지도 쓰지도 시지도 않은, 그런 덤덤한 맛. 하지만 그날 그날의 날씨에 따라서, 누군가와 나눈 인상 깊은 대화에 따라서, 코가 꽉 막혔다든지 옅은 두통이 있다든지 하는 건강 상태에 따라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끼고 뜻밖의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달걀찜 같은 하루가 있는가 하면 달걀 프라이 같은 하루도 있고, 삶은 달걀 같은 퍽퍽한 하루에 목이 메어올 때쯤 촉촉한 반숙 같은 날이 또 불쑥 찾아오는 것 같아요.

 달걀 한판처럼 담백하게 반복되는 매일을 기왕이면 재미있게 요리해먹고 싶어요. 저는 편의점에서 신상 까까를 사보거나, 새로운 방법으로 머리를 묶어보는 소박한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루가 간간해지는  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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