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재활용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STIFF: The Curious Lives of Human Cadavers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어보자는 마음이 있던 찰나, 유튜버 겨울 서점님의 절판대잔치 영상에서 영업당한 책. 절판됐지만 정남진도서관에 있어서 바로 빌려왔다.
사체 실험에 관한 이야기들이 모아져있는데 글이 유쾌해서 술술 읽기 좋았다. 중간중간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주제 자체는 흥미로움.

1. 턱 바로 아래서 잘린 머리가 바비큐용 닭처럼 얹어져 주름제거술 연습용으로 쓰인 세미나에 참관한 일화.
2. 의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는 산 사람에게 실험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취지로 매장된 시체를 파서 해부했으며 그런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부활업자라고 불렀다는 이야기. 심지어는 시체 공급을 위해 연쇄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는 이야기. 꼭 시신을 해부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
3. 다양한 환경에서 사체 부패에 대한 연구와 사망 시간 추정. 부패한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가스와 오물, 악취. 장의사들이 하는 일과 보존처리의 비영구성.
4. 사체를 활용한 자동차 충돌 실험과 안전장치 개선.
5. 승객들의 시신이 말하는 추락 사고의 진실. 추락 사고에서 시신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과 추락의 원인을 판별하는 부상분석.
6. '저지 능력'을 목표로 한 탄도학 연구에의 시체 활용.
7. 십자가형의 생리학에 대한 연구(못이 박힌 위치, 수의의 핏자국..)
8. 죽음을 판단하는 기준 - 심정지, 뇌사, 부패, 영혼의 무게, 영혼이 깃든 곳? - 뇌가 죽어도 심장이 뛰고, 심장이 멈춰도 뇌는 일정 시간 작동하며, 장기를 잘라 꺼내 다른 몸에 이식해도 동작한다. 생명 에너지가 몸 전체에 퍼져있다는 가설, 세포 속 생명단위(by 에디슨), 심장의 '세포 기억'을 통한 심장 이식의 전후의 인격 변화와 심장 기증자의 기억 경험
9. 잘린 머리를 살리는 연구 - 대뇌 동맥으로 산소가 함유된 혈액 주입해서 잘린 뇌가 기능하는지 연구, 개와 원숭이 뇌 신경계 연결 및 머리 교체 이식 실험
10. 의료 목적의 식인행위. 과거 노인을 100년 꿀에 재워 만든 밀과, 미라, 어린 아이나 처녀의 피, 인간의 지방, 생리혈, 귀지, 뇌, 오줌, 머리카락, 담즙, 엄지발톱, 대변, 침, 두개골, 골수, 땀 등.. 실험 사례나 용법/용량은 전혀 없었으며 단지 풍문과 연상작용을 기반으로 한 치료법. 20세기에도 시체의 피, 중국에서는 원기 회복을 위해 자식 살('효심'으로 강요), 오줌, 태아와 태반 알약 등을 먹어 치료하기도 함. 그 외에도 맛이 좋아 인육을 먹기도 했다.(1991년 인육 만두 사건)
11. 유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쓸모있는 일. 인간 퇴비. 유해 처리의 새로운 가능성, 부활 VS 인간 품위
12. 저자의 유해는 남편의 뜻대로 될 것이다. 그 결정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그이므로. 다만 장기기증만은 예외이다. 저자가 쓸 만한 장기를 가진 뇌사자가 된다면 누군가는 그걸 활용해야 한다. 만일 에드워드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그때는 저자가 시신을 기증한다는 기증서 양식을 작성할 것이다. 그리고 해부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본인이 시체에 대한 책을 한 권 썼다는 약력을 첨부할 것이다.



219p
심장 이식 담당 의사조차도 때로는 심장이 펌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영혼이 어디에 깃들어 있는지를 물었을 때 오즈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뇌 속에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존재의 알맹이가 심장 안에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면 뇌사자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뜻일까?
"두뇌가 없는 심장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삶과 죽음은 이분법적이지 않아요."
생과 사는 연속체이다. 법적인 선을 뇌사에서 그어놓는 게 여러가지 이유로 합당하지만 그게 사실 선이라는 뜻은 아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죽음에 가까운, 가사 상태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것들을 바라지 않죠."



306p
그녀는 퇴비더미에 삽을 꽂아 비옥한 흙을 한 삽 들어올린다. 뭔지 상상이 가지 않는 조각들이 잔뜩 섞여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마치 어른의 도움 없이 어린아이 혼자 구운 라자냐 같다. 그녀는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그게 뭔지 알려준다. 몇 주 전에 죽은 오리의 깃털, 남편 페테르가 섬의 반대편에서 양식하는 홍합 껍데기, 지난주에 샐러드를 만들고 남은 양배추. 그녀는 썩는 과정과 퇴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퇴비가 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은 산소, 물, 섭씨 37도씨를 많이 벗어나지 않는 기온 등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녀가 말하는 요지는 우리는 모두 자연이며, 모두 같은 재료를 기본으로 만들어졌고,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도 같다는 사실이다. 아주 기본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오리와 홍합과 지난주의 양배추 샐러드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자연을 존중해야 하고, 죽을 때 우리 자신을 흙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다.



310p
마찬가지로 그는 가족들이 심은 나무가 망자의 세포를 흡수하면 살아 있는 기념물이 된다는 구상을 하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과학으로서는 이게 부활에 최대한 근접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