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서른 살의 집배원 사토 타케루. 그날 밤, 그와 똑같은 모습을 한 '의문의 존재'가 찾아오더니 수명을 하루 늘리는 대신 세상에서 어떤 것이든 한 가지씩 없애자고 말한다.


전화 - 잘못 건 전화를 통해 만났던 전 여자친구와의 인연이 사라진다.

"코앞에 살면서도 4,5시간이나 통화했어. 만나는 게 더 빨랐을 텐데..."
"밤늦게까지 얘기하고 다음 날 만나선 졸곤 했지."
"그러다 내려야 할 역을 놓치고..."
"전화를 하려고 연애 했을 정도로.. 즐거웠어"



영화 - 매주 영화를 빌려주던 친구와의 인연이 사라진다.

"영화는 한없이 있어. 그러니 우린 계속 영화를 주고받겠지."

"만약에... 만약에 말인데 죽기 전에 영화를 딱 한 편만 본다면 뭘 볼 거야? 그걸 빌려줘."
"'난 책을 읽을 때 반드시 결말을 먼저 본다. 다 읽기 전에 죽으면 곤란하니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 빌리 크리스털"
"어떻게 딱 한 편만 고를 수 있겠어? 분명 고르는 동안에 죽을 거야."
"어쨌든 영화가 없어져.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그 전에 딱 한 편만 볼 수 있다면 뭘 볼래?"
"'좋은 이야기와 말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살 만하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마지막 한 편 따윈 존재하지 않아. 마지막은 없어. 우리와 영화의 관계는 영원히 계속될 거야."
"그럴 생각이었어. 하지만 마지막이야."
"왜?"

"안 돼, 못 찾겠어. 녀석이 죽는대. 내 역할은 녀석을 위한 영화를 고르는 건데... 그런데 못 찾겠어. 아까부터 계속 찾았는데... 아까부터 찾고 있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어."



시계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다면 누군가 슬퍼해 줄까요?
당신은 슬퍼해 줄 건가요?

"이걸로 수명이 하루 더 연장됐군, 잘 됐지?
어라? 화난 표정인데...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가 사라지는 게 괴롭나?
하지만 자신의 목숨이 가장 소중하잖아?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뭔가를 잃어야만 해"



고양이 - 반려묘 양상추, 양배추. 그리고 엄마.

[ 엄마가 남긴 편지 ]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난 얼마 후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단다. 그렇게 되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봤어.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좋은 곳에 가고 싶고 멋도 부리고 싶었지. 그런 것을 생각하던 중에 난 깨닫게 됐단다.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은 전부 널 위해 하고 싶은 일이란 걸. 하지만 이제 내가 널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없구나. 그러니 이제부터 너의 멋진 점에 관해 써 보려 해.

너의 멋진 점
넌 항상 내 편이 되어 줘. 그리고 누군가가 기쁠 때나 슬플 때 그 감정을 함께 나눌 줄 알지. 너의 사랑스러운 잠든 얼굴. 네 곱슬머리. 자신도 모르게 코를 만지는 버릇. 필요 이상으로 주위에 신경을 쓰는 그 성격.
네가 태어남으로써 내 인생이 얼마나 멋지고 빛났는지 넌 모를거야.

늘 고민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너. 하지만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마지막에는 올바른 답을 낼 줄 아는 너. 넌 멋진 점이 많단다. 네 멋진 점을 잊지 않고 살아 줬으면 해. 그것만 있으면 너도 행복하고 네 주변 사람들도 틀림없이 행복할 테니까. 언제까지나 네 멋진 점을 잃지 않기를.

엄마는 그런 생각을 해. 사람이 고양이를 기르는 게 아냐. 고양이가 사람 곁에 있어 주는 거야. 양배추를 부탁할게.
참, 아니지! 양배추! 이 아이를 부탁해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세상이 소중한 것으로 가득하단 걸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고양이는 없애지 마요. 물론 죽는 건 무섭지만 난 내 남은 수명을 알고 있고 그걸 받아들이며 죽을 수 있어요. 그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나죠? 내 안의 또 다른 나... 난 계속 스스로와 얘기하고 있던 거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남겨둘 소중한 것들, 소중한 인연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사토 타케루.

아버지께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다면 누군가 슬퍼해 줄까요?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이루어지지 못한 꿈과 생각... 사는 동안 못 했던 일, 남겨둔 일 등.. 분명 수많은 후회가 남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있던 세상과 내가 사라진 세상은 분명 다르리라 믿고 싶어요. 정말 작은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온 증거니까요. 몸부림 치고 고민하며 살아온 증거요.

고맙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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