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희의 기도문
주님. 예기치 못하게 우리가 서로의 손을 놓치게 되더라도, 그 슬픔에 남은 이의 삶이 잠기지 않게 하소서.
혼자 되어 흘린 눈물이 목 밑까지 차올라도, 거기에 가라앉지 않고, 계속해서 삶을 헤엄쳐 나아갈 힘과 용기를 주소서.
희태의 기도문
주님. 우리 앞에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어렵게 맞잡은 이 두 손 놓지 않고 함께 이겨낼 수 있기를...
무엇보다 더 힘든 시련은 명희씨 말고 저에게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희태의 편지
어김없이 오월이 왔습니다.
올해는 명희씨를 잃고 맞은 마흔 한 번째 오월이에요.
그 간의 제 삶은 마치 밀물에서 치는 헤엄 같았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냥 빠져 죽어보려고도 해봤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또다시 그 오월로 나를 돌려보내는 그 밀물이 어찌나 야속하고 원망스럽던지요.
참 오랜 시간을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로 살았습니다.
그 해 오월에 광주로 가지 않았더라면,
그 광주에서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갈림길에서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살지 않았을까 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명희씨가 돌아와준 마흔 한 번째 오월을 맞고서야 이 모든 것이 나의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그해 오월 광주로 내려가길 택했고, 온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며,
좀 더 힘든 시련은 당신이 아닌 내게 달라 매일같이 기도했습니다.
그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내가 죽고 당신이 살았더라면...
내가 겪은 밀물을 고스란히 당신이 겪었겠지요. 남은 자의 삶을.
그리하여 이제 와 깨닫습니다. 지나온 나의 날들은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음을.
41년간의 그 지독한 시간들이... 오롯이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이었음을.
내게 주어진 나머지 삶은 당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살아보려 합니다. 거센 밀물이 또 나를 그 오월로 돌려보내더라도...
이곳엔 이제 명희씨가 있으니...
다시 만날 그날까지 열심히 헤엄쳐 볼게요.
2021년 첫 번째 오월에. 황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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